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규제와 정부의 `반값 아파트` 공급 정책 등으로 금융시장과 부동산시장이 뒤숭숭하다.
특히 주택 구입 비수기를 맞아 강남권을 비롯한 대부분 지역에서 아파트 거래가 뚝 끊긴 상황이다.
거액 자산을 가진 은행ㆍ증권 프라이빗뱅킹(PB) 고객의 재테크 트렌드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그 동안 재테크 1순위로 `아파트`만 믿고 투자했다면 최근에는 투자처가 다양해진 게 특징이다.
올 한 해 동안 PB고객들은 종합부동산세 부과와 내년 양도소득세 중과세로 인해 상반기에는 아파트를 투자 대상에서 제외했지만 추석 이후 아파트 값 급등 시기에는 강남권 소형 아파트를 중심으로 적극 매수에 나서기도 했다.
◆ 해외 부동산 사 볼까 = 50억원대 자산을 갖고 있는 한 모씨(45)는 지난달 말 보유하고 있던 강남 30평대 아파트를 팔았다.
대신 베트남 호찌민에 짓고 있는 고급 주상복합 단지에 투자하기로 결정하고 최근 현장까지 날아가 투자상담을 받았다.
한씨는 "내년 양도세 중과세 부담도 있고 해서 한 채를 정리했다"며 "대신 연 10% 이상 수익이 난다는 베트남 주상복합 단지에 투자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한국투자증권 강남PB센터 관계자는 "연말 비수기인 탓도 있지만 최근 강남 아파트를 사겠다는 PB고객이 크게 줄었다"며 "대신 베트남ㆍ말레이시아ㆍ두바이의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에 대한 투자문의가 많다"고 전했다.
일부 은행과 부동산 컨설팅 회사에서는 PB고객들을 이끌고 직접 현지로 날아가 투자설명회를 하기도 한다.
한국과 베트남 현지에 사무실을 두고 부동산 컨설팅을 하는 A씨는 "베트남 부동산에 투자하겠다며 현지 사정을 물어오는 사례가 크게 늘었다"며 "아파트를 매입해임대료를 받을 때 권리 관계와 부동산 대금 지불, 임대료 송금 등을 가장 궁금해 한다"고 전했다.
우리은행 대치지점 PB고객 최 모씨(48ㆍ의사)는 베트남 투자설명회를 다녀온 뒤 주변 지인들끼리 20억원 정도 펀드를 조성해 호찌민에 새로 짓는 고급 아파트 장기 임대권을 사들이기로 했다.
최씨와 투자자들은 임대사업을 통해 연 10% 수준 임대수익과 가격 상승에 따른 시세 차익을 노리고 있다.
◆ 그래도 강남 집값 더 오를 것 = 치과 전문의 정 모씨(52)는 최근 아들 명의로 강남 30평대 아파트를 10억5000만원을 주고 구입했다.
11ㆍ15 부동산대책과 반값 아파트 공급 계획, 주택담보대출 규제 등에도 불구하고 내년 집값이 더 오를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정씨는 "최근 대출이자가 오르면서 언론에서는 `이자폭탄`이라고 하지만 그래봐야 2억원 빌렸을 때 1년 동안 100만원 더 내면 된다"며 "집값 오르는 것에 비하면 이 정도 이자부담은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주택 구입 비수기를 맞아 아파트를 구입하려는 PB고객은 크게 줄었다고 은행 관계자들은 전한다.
그러나 강남 집값이 내년 이후에도 더 오를 것이라는 의견은 변함이 없었다.
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주택 가격이 폭등하는 것을 봐 온 거액 자산가들에게 강남 부동산 불패에 대한 확신은 대단하다.
삼성동 아이파크 고객을 상대하는 하나은행 삼성역 지점의 이준엽 PB부장은 "내년 이후에는 양도세 중과세 때문에 다주택 보유자들이 매물을 내놓지 않을 것"이라며 "매물 자체가 줄어들면서 주택 가격이 더 오를 것으로 보는 고객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이 부장은 "신도시 입주도 앞으로 3~4년이 걸리기 때문에 당분간 강남 집값이 더 오를 것으로 보고 투자를 고려하는 고객도 있다"고 덧붙였다.
한정 대우증권 압구정지점 차장은 "강남권에 공급이 없는 상태에서 수요는 꾸준히 강남으로 유입되기 때문에 수급 차원에서 추가 상승을 기대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높은 세금에 대한 걱정도 요즘엔 많이 가라앉은 분위기다.
특히 최근 몇 달 새 집값이 크게 뛰면서 세금 걱정이 크게 줄어든 상태다.
김해식 우리은행 투체어스 PB팀장은 "종합부동산세 고지서를 받았지만 PB고객들의 동요는 거의 가라앉은 상태"라며 "오히려 세금 상승분이 전세금이나 임대료 등 상승으로 이어져 중산층에 부담이 옮겨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 주식으로 갈아타 볼까 = 100억원대 자산을 갖고 있는 한의사 김 모씨(56)는 최근 자산 포트폴리오에서 주식 비중을 크게 늘렸다.
그 동안 해외 주식형 펀드에만 자산의 20% 정도를 투자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국내 주식형 펀드에 새롭게 가입한 것이 눈에 띈다.
올해 초 주식시장이 침체에 빠지면서 자산 포트폴리오에서 주식을 대부분 뺐던 PB고객들이 최근에는 주식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굿모닝신한증권 도곡지점 관계자는 "지수가 1400을 넘어서면서 주식형 상품에 대한 문의가 크게 늘었다"며 "세금 때문에 부동산 매매가 어려워지면서 차선책으로 주식 투자를 생각하는 고객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 동안 주식형 펀드 가입을 고려하고 있던 PB고객들이 최근 지수가 다시 강한 반등을 보이자 실제 펀드 가입을 행동으로 옮기고 있다"며 "특히 연말을 앞두고 배당주와 관련된 상품에 투자하는 고객이 많다"고 덧붙였다.
국외 펀드에 대한 관심도 여전하다.
한정 차장은 "최근 한 고객이 토지보상금을 받고 투자상담을 왔는데 이제 부동산은 그만 하겠다며 중국ㆍ인도ㆍ일본 주식형 펀드에 거액을 분산 가입했다"고 전했다.
◆ 당분간 관망하자 = 반면 당분간 아무 것에도 투자하지 않고 관망하자는 움직임도 있다.
서울 도곡동 타워팰리스에 사는 윤 모씨(70)는 최근 보유하고 있는 아파트 두 채를 모두 급매물로 정리했다.
윤씨는 "주택담보대출을 규제한 것은 사는 사람뿐만 아니라 파는 사람에게도 부담이 된다"며 "종부세는 어떻게 해서라도 내겠는데 내년 이후 양도세 중과는 치명적이기 때문에 아파트는 모두 정리했다"고 말했다.
주식시장 강세에도 불구하고 윤씨는 주식에 투자할 마음이 전혀 없다.
윤씨는 "주식 등 위험자산에 투자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며 "당분간 머니마켓펀드(MMF) 같은 단기성 금융상품에 돈을 넣어 두고 내년 재테크 시장을 지켜볼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국민은행 도곡지점 관계자는 "연령층이 높은 고객일수록 주식 투자를 꺼리는 성향이 강하다"며 "이들은 일단 유동자산을 MMF, 환매조건부채권(RP), 기업어음(CP) 등 단기 금융상품에 넣고 당분간 관망하면서 투자 대상을 찾고 있다"고 전했다.
[고재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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