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 철로자전거
철마에 '나'를 싣고 쉬엄쉬엄 꿈길 2㎞
“어머, 생각보다 너무 쉽게 잘 달리네!” 철로자전거를 탄 젊은 여성들의 탄성과 환호소리가 봄빛처럼 화사하다.
어느날 거대한 숲이 갑작스러운 지각변동에 땅속으로 꺼져 들어갔다. 그리고 3억년. 그 시간의 무게가 퇴적된 식물군을 탄소 덩어리로 빚어냈다. 새카만 속에 타오를 뜨거움을 간직한 석탄을.
경북 문경은 새 길이 뚫리면서 교통의 요충지로, 관광명소로 거듭나고 있다. 하지만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이곳은 전국 석탄 생산량의 13%를 차지한 탄광지역이었다.
은성광업소 등 수십 개의 석탄 광산이 군집해 있었다. 연탄을 때던 70, 80년대, 한창 경기가 좋을 때는 ‘문경 길거리의 강아지도 지폐를 물고 다닌다’, ‘안동에선 양반자랑 말고 문경에선 돈자랑 말라’고 할 정도로 흥청거렸다. 당시 막장에서 석탄 먼지와 싸우던 광부들은 최고의 사윗감으로 인기 높았던 호시절이었다.
하지만 석탄은 얼마 안가 사양산업으로 밀려났고, 문경의 석탄을 실어 나르던 가은선 철로도 운명을 함께 했다. 결국 1994년 은성광업소 폐광이 가은선의 폐선을 불렀다.
육중한 철바퀴의 진동이 끊긴 채 녹슬어버린 철로. 그 잊혀졌던 가은선이 최근 봄처녀 마냥 들떴다. 석탄 실은 화물차 대신 관광객을 태운 철로자전거를 나르느라 신이 났기 때문이다.
3년 전 시민의 아이디어로 철로자전거가 처음 구상됐다. 문경시는 미국에서 철로자전거 2대를 들여와 실험을 거듭, 한국형 철로자전거를 만들어냈다. 드디어 지난달 29일 관광 철로자전거로 본격 운영을 시작했다.
진남역에서 가은역까지 9.6㎞ 구간이 철로자전거 코스다. 하지만 다리 등에 안전망, 난간 등 안전시설이 덜 갖춰져 지금은 진남역을 기준으로 불정역과 가은역 방향 약 2㎞씩만 운영된다.
작고 아담한 진남역에서 철로자전거에 올라탔다. 안내원은 “불정역쪽 코스는 낙동강 지류인 영강을 벗삼아 계곡미가 으뜸이고 가은역쪽 코스는 두 개의 터널을 지나는 맛이 색다르다”고 설명한다. 고민 끝에 가은역 코스를 선택했다.
페달에 발을 얹고 달려보니 생각보다 가볍다. 도로보다 레일이 저항을 덜 받는단다. 더구나 오르막이라 부를 만한 경사도 없어 쭉쭉 잘 나간다. 역사 바로 옆은 허름한 농가다. 철로까지 나와 볕을 쬐고 있던 수탉 한마리가 오두막 옆 진남터널로 안내한다. 270여m의 터널안은 컴컴하다.
문경시가 간이로 반짝이 불을 설치했지만 어둠을 이겨내지 못한다. 커플들이 나눠 탄 앞선 자전거들에서 흥겨운 비명소리가 터져 나온다. 어두운 게 마냥 좋은가 보다.
터널을 나오니 영강 둑너머로 넓게 논밭이 펼쳐졌다. 메마른 억새를 조금 지나니 낙석을 피해 만든 피암터널이다. 빗살처럼 채광시설이 뚫려있다. 강줄기를 따라 굽어진 터널 안으로 잘려진 빛들이 내리 꽂힌다.
터널을 나와 얼마 안가 아쉽게도 반환점이다. 퍽퍽해진 허벅지를 두들기며 한숨 돌린뒤 손으로 들어올려 방향을 바꾼 철로자전거를 타고 다시 진남역으로 향한다.
진남역의 철로자전거는 모두 30대다. 이용료는 대당 3,000원. 주말에는 1시간 간격으로 운영된다. (054)550-6375
철로자전거에서 내렸으면 가은역 인근의 석탄박물관을 들러보자. 은성광업소 자리에 세워진 전시관으로 연탄 모양의 둥근 건물이 이색적이다.
고생했던 광부들의 생활상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당시의 광부와 문경시청 공무원의 월급 봉투를 비교 전시한 코너도 재미있다. 광부가 2배 이상 높았다.
전시관 코스는 야외 전시공간을 지나 실제 석탄을 캐던 굴로 이어진다. 갱 안에 조성된 230m의 체험로에는 붕괴순간, 갱내 사무실, 갱내 점심식사 등 다양한 체험 시설을 갖추고 있어 지루하지 않다. (054)550-6424
철로자전거 외에 문경의 또 다른 체험거리는 사격이다. 불정자연휴양림 가는 길 산속에 문경시가 직영하는 관광사격장이 있다. 공기총, 권총사격장과 함께 클레이사격장도 갖추고 있다.
날아가는 흙접시를 맞추는 클레이사격은 초보자도 쉽게 배울 수 있다. 1통(25발)에 1만7,000원으로 다른 지역의 사격장에 비해 저렴한 편이다. (054)550-6446
문경에서는 약돌돼지를 꼭 먹어보길 권한다. 게르마늄과 셀레늄 성분의 약돌 분말을 첨가한 사료로 키운 돼지로 누린뺐?나지 않고 육질도 부드러운 게 별미다. 문경새재도립공원 안의 음식점 ‘문경약돌돼지’(054-571-2020)가 유명하다.
문경=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문경은 도자기의 땅
경기 광주가 관요(官窯)라면 문경은 민요(民窯)의 본고장이다. 문경은 한양과 영남을 잇는 길목으로 예부터 도예가 발달해왔다. 문경읍 근처에서 발굴된 가마터만도 82개나 달한다. 질 좋은 흙과 땔감, 그리고 판로까지 3박자를 갖춘 도자기의 땅이다.
문경은 특히 일본이 국보로 모시는 조선 찻사발을 처음으로 재현해낸 곳이다. 사기장 가운데 국내 유일의 무형문화재인 김정옥(65) 명장은 “솜씨 좋은 부친에게 일본인들이 찾아와 그릇 밑의 유약이 거품처럼 엉겨붙는 찻사발 재현을 부탁했고 아버님이 처음으로 그 찻사발을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지금 문경에는 김정옥 명장 외에도 천학봉, 이학천 선생 등과 많은 후계자들이 전통가마에 불을 때고 있다. 문경 도예의 특징은 옛 방식 그대로 따른다는 것. 모터물레 대신 발물레를 돌리고 가스가마 대신 장작으로 불지피는 망댕이가마를 고집한다.
김정옥 명장은 그 이유를 “선조들의 작품을 아직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옛방식 그대로 따라야 비슷하게라도 나올 수 있지 가스로 굽고 틀로 찍어내는 것은 그저 ‘술법’에 지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문경의 도예인들이 뭉쳐 30일부터 5월8일까지 ‘2005 문경 한국 전통 찻사발축제’를 연다. 한국 중국 일본 대만 등 동아시아 국가의 찻사발을 한데 모아 비교하는 전시회도 열고 전국 도예명장 특별전, 찻사발 공모대전, 문경도자기 명품전 등을 연다.
도자기전시관에서는 도자기빚기, 망댕이가마 불지피기, 찻사발모자이크, 장작패기 등 다양한 체험행사도 진행된다. 문경시 문화관광과 (054)550-6394
철마에 '나'를 싣고 쉬엄쉬엄 꿈길 2㎞
“어머, 생각보다 너무 쉽게 잘 달리네!” 철로자전거를 탄 젊은 여성들의 탄성과 환호소리가 봄빛처럼 화사하다.
어느날 거대한 숲이 갑작스러운 지각변동에 땅속으로 꺼져 들어갔다. 그리고 3억년. 그 시간의 무게가 퇴적된 식물군을 탄소 덩어리로 빚어냈다. 새카만 속에 타오를 뜨거움을 간직한 석탄을.
경북 문경은 새 길이 뚫리면서 교통의 요충지로, 관광명소로 거듭나고 있다. 하지만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이곳은 전국 석탄 생산량의 13%를 차지한 탄광지역이었다.
은성광업소 등 수십 개의 석탄 광산이 군집해 있었다. 연탄을 때던 70, 80년대, 한창 경기가 좋을 때는 ‘문경 길거리의 강아지도 지폐를 물고 다닌다’, ‘안동에선 양반자랑 말고 문경에선 돈자랑 말라’고 할 정도로 흥청거렸다. 당시 막장에서 석탄 먼지와 싸우던 광부들은 최고의 사윗감으로 인기 높았던 호시절이었다.
하지만 석탄은 얼마 안가 사양산업으로 밀려났고, 문경의 석탄을 실어 나르던 가은선 철로도 운명을 함께 했다. 결국 1994년 은성광업소 폐광이 가은선의 폐선을 불렀다.
육중한 철바퀴의 진동이 끊긴 채 녹슬어버린 철로. 그 잊혀졌던 가은선이 최근 봄처녀 마냥 들떴다. 석탄 실은 화물차 대신 관광객을 태운 철로자전거를 나르느라 신이 났기 때문이다.
3년 전 시민의 아이디어로 철로자전거가 처음 구상됐다. 문경시는 미국에서 철로자전거 2대를 들여와 실험을 거듭, 한국형 철로자전거를 만들어냈다. 드디어 지난달 29일 관광 철로자전거로 본격 운영을 시작했다.
진남역에서 가은역까지 9.6㎞ 구간이 철로자전거 코스다. 하지만 다리 등에 안전망, 난간 등 안전시설이 덜 갖춰져 지금은 진남역을 기준으로 불정역과 가은역 방향 약 2㎞씩만 운영된다.
작고 아담한 진남역에서 철로자전거에 올라탔다. 안내원은 “불정역쪽 코스는 낙동강 지류인 영강을 벗삼아 계곡미가 으뜸이고 가은역쪽 코스는 두 개의 터널을 지나는 맛이 색다르다”고 설명한다. 고민 끝에 가은역 코스를 선택했다.
페달에 발을 얹고 달려보니 생각보다 가볍다. 도로보다 레일이 저항을 덜 받는단다. 더구나 오르막이라 부를 만한 경사도 없어 쭉쭉 잘 나간다. 역사 바로 옆은 허름한 농가다. 철로까지 나와 볕을 쬐고 있던 수탉 한마리가 오두막 옆 진남터널로 안내한다. 270여m의 터널안은 컴컴하다.
문경시가 간이로 반짝이 불을 설치했지만 어둠을 이겨내지 못한다. 커플들이 나눠 탄 앞선 자전거들에서 흥겨운 비명소리가 터져 나온다. 어두운 게 마냥 좋은가 보다.
터널을 나오니 영강 둑너머로 넓게 논밭이 펼쳐졌다. 메마른 억새를 조금 지나니 낙석을 피해 만든 피암터널이다. 빗살처럼 채광시설이 뚫려있다. 강줄기를 따라 굽어진 터널 안으로 잘려진 빛들이 내리 꽂힌다.
터널을 나와 얼마 안가 아쉽게도 반환점이다. 퍽퍽해진 허벅지를 두들기며 한숨 돌린뒤 손으로 들어올려 방향을 바꾼 철로자전거를 타고 다시 진남역으로 향한다.
진남역의 철로자전거는 모두 30대다. 이용료는 대당 3,000원. 주말에는 1시간 간격으로 운영된다. (054)550-6375
철로자전거에서 내렸으면 가은역 인근의 석탄박물관을 들러보자. 은성광업소 자리에 세워진 전시관으로 연탄 모양의 둥근 건물이 이색적이다.
고생했던 광부들의 생활상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당시의 광부와 문경시청 공무원의 월급 봉투를 비교 전시한 코너도 재미있다. 광부가 2배 이상 높았다.
전시관 코스는 야외 전시공간을 지나 실제 석탄을 캐던 굴로 이어진다. 갱 안에 조성된 230m의 체험로에는 붕괴순간, 갱내 사무실, 갱내 점심식사 등 다양한 체험 시설을 갖추고 있어 지루하지 않다. (054)550-6424
철로자전거 외에 문경의 또 다른 체험거리는 사격이다. 불정자연휴양림 가는 길 산속에 문경시가 직영하는 관광사격장이 있다. 공기총, 권총사격장과 함께 클레이사격장도 갖추고 있다.
날아가는 흙접시를 맞추는 클레이사격은 초보자도 쉽게 배울 수 있다. 1통(25발)에 1만7,000원으로 다른 지역의 사격장에 비해 저렴한 편이다. (054)550-6446
문경에서는 약돌돼지를 꼭 먹어보길 권한다. 게르마늄과 셀레늄 성분의 약돌 분말을 첨가한 사료로 키운 돼지로 누린뺐?나지 않고 육질도 부드러운 게 별미다. 문경새재도립공원 안의 음식점 ‘문경약돌돼지’(054-571-2020)가 유명하다.
문경=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문경은 도자기의 땅
경기 광주가 관요(官窯)라면 문경은 민요(民窯)의 본고장이다. 문경은 한양과 영남을 잇는 길목으로 예부터 도예가 발달해왔다. 문경읍 근처에서 발굴된 가마터만도 82개나 달한다. 질 좋은 흙과 땔감, 그리고 판로까지 3박자를 갖춘 도자기의 땅이다.
문경은 특히 일본이 국보로 모시는 조선 찻사발을 처음으로 재현해낸 곳이다. 사기장 가운데 국내 유일의 무형문화재인 김정옥(65) 명장은 “솜씨 좋은 부친에게 일본인들이 찾아와 그릇 밑의 유약이 거품처럼 엉겨붙는 찻사발 재현을 부탁했고 아버님이 처음으로 그 찻사발을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지금 문경에는 김정옥 명장 외에도 천학봉, 이학천 선생 등과 많은 후계자들이 전통가마에 불을 때고 있다. 문경 도예의 특징은 옛 방식 그대로 따른다는 것. 모터물레 대신 발물레를 돌리고 가스가마 대신 장작으로 불지피는 망댕이가마를 고집한다.
김정옥 명장은 그 이유를 “선조들의 작품을 아직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옛방식 그대로 따라야 비슷하게라도 나올 수 있지 가스로 굽고 틀로 찍어내는 것은 그저 ‘술법’에 지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문경의 도예인들이 뭉쳐 30일부터 5월8일까지 ‘2005 문경 한국 전통 찻사발축제’를 연다. 한국 중국 일본 대만 등 동아시아 국가의 찻사발을 한데 모아 비교하는 전시회도 열고 전국 도예명장 특별전, 찻사발 공모대전, 문경도자기 명품전 등을 연다.
도자기전시관에서는 도자기빚기, 망댕이가마 불지피기, 찻사발모자이크, 장작패기 등 다양한 체험행사도 진행된다. 문경시 문화관광과 (054)550-6394